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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일의 역사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양 복식이 전해진 것은 19세기 말엽 신사유람단이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수트를 쇼핑하면서부터다. 일제시대가 지나면서 한국의 문화는 미국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는데, 남성복 역시 실용성, 편리함 등의 미국적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능적이고 펑퍼짐한 실루엣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의관을 정제하지 않고서는 외출을 하지 않았던 한국 남자들의 세련되고 원칙 있는 스타일은 사실, 이때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있다.
수트에 대한 철학과 가치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한국 기성복 브랜드가 정착 - 확산될 수 있었던 데에는 자본과 열정을 가진 대기업들의 공이 크다. 다만 70년대까지는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 생활수준이 심각할 정도로 소박하였으므로, 수트는 패션 지향적인 스타일보다는 보수적인 면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87년 7월부터 이루어진 패션 상품의 수입자유화 조치가 실시된 후 일본, 이탈리아, 미국, 프람스 등의 패션브랜드가 수입되었고, 1989년의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는 많은 사람들이 글로벌 브랜드들을 직접 경험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렇듯 시작은 늦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단기간에 기록 세우기를 즐기는 민족답게 꼼꼼한 장인정신과 빠른 안목으로 가까운 미래에 좋은 글로벌 브랜드를 내놓지 않을까.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수트의 조건
취직과 승진, 프로젝트의 성공 같은 비즈니스의 요소들이 신속하게 결정되는 요즘, 우리들은 사람을 만난 지 2초 만에 그를 판단한다. 한 남자의 옷차림과 매너는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눈에 거슬리는 단 한 가지 아이템만으로 센스 없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장소와 상황에 맞지 않은 복식 때문에 비즈니스 관계가 진전되지 못할 수도 있다. 패션이나 문화적 센스가 없는 관리자는 그 직위에 필요한 다른 부분에도 둔감하리라고 짐작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이처럼 옷을 입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옷을 제대로 입는다는 것은 당신이 어떤 원칙을 알고 있고 그 원칙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시사한다. 장소와 상황에 맞는 옷차림은 주변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뜻이며, 또한 상대에게서 존중 받고 싶은 마음을 보이지 않게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업계의 특성이나 분위기에 따른 예외는 있지만 보통 색상이 어두운 수트 일수록 질서 있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수적인 분야에서 일한다면 보다 진지한 분위기를 주는 수트를 고를 필요가 있고, 더블이나 원버튼 수트 등의 과감한 시도는 천천히 시도할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맨으로서는 네이비나 차콜 그레이 계열의 2, 3 버튼 수트라면 안전한 선택이다. 다만 블랙 수트는 준엄해 보이며, 애도의 느낌이 깃들여져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보다는 장례식이나 포멀한 파티에 선호된다. 화이트와 블랙 수트는 다른 색상의 수트와는 그 무드가 선명하게 구별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장소에서만 입는 것이 좋다.


인생의 첫 번째 수트
멋진 수트는 ‘비싸 보이네'가 아닌 바로 ‘당신'이 ‘오늘 정말 멋있는데!’라는 찬사를 이끌어낸다. 수트에 중요한 건 외부가 아닌 내면, 수(數)의 문제가 질(質)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트는 그저 기계적으로 입어야 하는 유니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투자 개념으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빼어나게 잘 만든 수트란 단순히 가격표와 브랜드 라벨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훌륭한 소재와 재단술의 흔적, 수트가 만들어지기까지 소비된 소중한 노동력과 시간, 열정과 철학을 통해 만들어진 브랜드의 가치가 모여서 수트의 격을 말해주는 것이다(구매자의 입장에서는 브랜드의 이름값은 뺀 채 장인정신과 소재의 질, 단추에 대한 값만 지불하고 싶을테지만-----).

시대를 넘어 좋은 수트를 고르는 안목
수트의 가격은 소재의 질, 수작업의 양 그리고 브랜드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은 자신의 조건이다. 모든 사람이 수제 맞춤복을 입을 필요는 없으며, 이미 그레이 수트를 여러 벌 갖춰둔 남자가 좋은 브랜드라고 해서 또 회색을 옷장에 추가하지는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트를 마련하는 원칙은 이렇다. 일단 옷장에 수트가 한 벌도 없다고 상상한다. 수트를 오직 한 벌만 가질 수 있다면 그건 비즈니스와 관혼상제 모두에 적합한 차콜 그레이 울 소재가 우선이다. 혹시 보너스를 넉넉히 받아 두 벌을 장만할 수 있다면 차콜 그레이와 네이비 두 가지 컬러를 차례로 선택한다. 다행히 세 벌을 가질 수 있다면 차콜 그레이, 네이비, 그리고 브라운 순서로 옷장을 채운다. 이것은 시대와 국가를 넘어 오랫동안 이어져온 남성복의 역사이자 전통이며 클래식 복식을 이해하는 작은 수순이기도 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매일의 옷차림에 변화를 주는 동시에 수트들이 쉴 시간을 줄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해서, 같은 수트를 이틀 연속 안 입는 방법으로 옷차림의 변화를 주면서, 자연스럽게 복장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것이다.

쥐색이라고 표현되는 차콜 그레이 컬러는 공식 석상에서 애용되는 동시에 상의와 하의를 각각 독립적으로 활용 가능하므로 최초로 구입하는 수트로서 특히 적합하다. 특히 어두운 회색 바지는블레이저나 다른 재킷과도 활용이 가능하므로 두루 쓰임새가 많을 것이다. 차콜 그레이보다 밝은 그레이 컬러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트로서, 긴장감을 덜고 여유를 갖고 싶은 자리에 어울린다. 네이비 수트는 유럽과 한국에서 몹시 사랑 받는 색상으로 보수적인 자리나 신뢰감이 필요한 자리 모두에 적합하다. 네이비 수트의 상의는 독립적으로 다른 컬러의 바지와 함께 블레이저나 재킷처럼 입으면 활용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브라운 수트는 피부가 옐로우 톤인 아시아인에게 의외로 잘 어울리는데, 입었을 때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남다른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수트에서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소재와 패턴, 그리고 디자인이지만, 더욱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부분은 오히려 실루엣이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브랜드가 자신에게 맞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자신에게 어울리는 실루엣을 가진 브랜드를 찾아내는 일이 쉬울 거라고 예상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과정이다. 컬러와 실루엣을 기반으로 기본 스타일을 갖춘 후엔 좀 더 다양한 색상과 패턴이 있는 수트를 구입한다. 이를테면 날씬해 보이는 스트라이프 수트를 마련하고 나서, 좀 더 드레시한 버들 브레스티드, 정장 또는 캐주얼 스타일로 다양하게 입을 수 있는 면이나 리넨 소재 수트로 옷장을 차근차근 늘려가는 것이다.

간단히 법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좋은 수트의 조건은 스타일, 소재, 봉제 이 3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향을 지향한다. 그래서 항상 좋은 수트를 찾는 습관을 들이고, 가격과 쉽게 타협하지 않으면서 유행을 타지 않는, 무늬가 없고 클래식한 아이템부터 시작해서 그 품목과 잘 어울리는 셔츠나 타이를 서서히 추가하는 것이다. 자신의 체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브랜드를 추천 받는 것도 좋다. 자신이 입을 옷이므로 가능하면 직접 구매해야 한다. 입어보지 않고 수트를 사는 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과 같다. 요즘 세상엔 있을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수트 스타일
수트 가격은 옷의 지출비용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수트를 살 때에는 가능한 시행착오가 없어야 한다.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가정 경제'에 심각한 손신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몸에 맞지 않는 싸구려 ‘양복'수십 벌보다 잘 만들어진 ‘수트'한 벌이 훨씬 낫다는 튼튼한 지혜를 명심하시라. 또한 어떤 수트를 입었을 때 현재의 자신보다 더 젊거나 건강해 보이거나 섹시해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브랜드라고 해도 그건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제품이다.
마음에 드는 브랜드나 제품에 끌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그러나 유행과 상관없이 최대한 오래 입을 수 있고, 자신이 갖고 있는 다른 옷들과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는 스타일을 선택하는 건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면, 창조적인 건축가는 증권회사의 젊은 매니저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옷장을 채워갈 것이다. 보수적인 기업의 임원과 스스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는 또한 다른 스타일의 옷이 필요하다. 근무 환경, 동료와 클라이언트의 기대, 그 모든 것이 다르니까. 그러므로 스스로 필요한 복장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이 순서다. 자신에게 맞는 수트 스타일을 찾기 위해선 직업 외에도 외모, 성격, 예산 같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선택한 수트가 자신의 체형, 개성, 그리고 철할을 잘 드러내는지도 함께 살핀다. 당연히 수트를 입는 장소도 생각해야 한다. 이를테면 싱글에 비해 드레시한 더블 수트는 자유분방한 사무실보다는 품위나 예절이 요구되는 공간에 더욱 우울린다. 그런 보수적인 사무실이라면 네이비나 차콜 그레이 같은 어두운 색에 무늬가 없거나 핀스트라이프(pinstripe, 가는 세로 줄무늬)와 같은 미세한 패턴을 가진 스타일이 효과적이다.


옷 잘 입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지금 바로 유행하고 있는 흐름과 반대인 스타일로 옷을 입는 경우가 많다. 어느 드라마에서 본 듯한 수트 룩을 그대로 따르는 건 일견 안전한 일이긴 하지만, 스스로의 상상력을 제한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미디어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최신 제품들보다, 오래된 듯한 트위드 소재의 격자무늬 수트를 입고 있는 나이 든 신사의 모습이 더 유쾌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유행에 상관없이 그 사람과 수트가 너무나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습을 고려해 그것을 반영하는 옷을 고르는 습관을 들인다. 그렇게 발견한 제품이나 브랜드를 다시 자신만의 취향으로 컬러나 소재에 변화를 주면서 옷과 점점 친해져 가는 것이다.
신중하게 고른 수트라면 당신이 입을 열기 전에 옷이 먼저 말할 것이다. 클래식하면서 체형에 꼭 맞는 수트는 당신이 원칙을 지키면서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한다는 느낌을 준다. 넉넉한 스타일의 수트를 입고 있다면 긴장감보다는 편안함을 좋아한다는 표현이다. 대담한 색과 패턴은 타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어둡거나 무늬가 없는 색은 차분한 인상을 주고 싶다는 뜻이다.


체형과 디자인을 고려하라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스몰, 미디엄, 라지 혹은 95, 10 정도로 자신의 사이즈를 기억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스마트폰으로 휴대전화기를 바꾸긴 했지만, 여전히 패션은 외계 언어들이 난무하는 사각지대처럼 느끼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에게는 신체 비율이나 자신의 체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옷 입기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라고 하겠다. 복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언제나 잊지 말아야 포인트는 브랜드를 먼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키가 작건 크건, 뚱뚱하건 날씬하건, 자신의 체형을 염두에 두고 수트를 입어야 한다. 자신의 몸이 가장 이상적이고도 멋지게 보이길 원한다면, 개개인의 체형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언제나 신체 사이즈를 먼저 이해하고, 자신이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지를 생각해보면 해답을 구하는 과정도 분명해진다. 키가 커 보이고 싶은지, 젊어 보이는 게 좋은지, 혹은 슬림한 모습을 원하는지 등의 목적을 알고 있다면, 체형의 단점을 가려주고, 장점을 부각시켜주는 방향으로 수트를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

수트 스타일에 따라 우리 몸은 날씬하거나 뚱뚱하게, 또는 키가 작거나 크게 보일 수 있다. 즉 세로 스트라이프는 키가 더 커 보이게 하지만, 가로 스트라이프는 실제 이상으로 몸집을 더 커 보이게 만든다. 물론 이런 원칙이 절대적인 건 아니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라도 유연하고 가벼운 울로 만든 핀스트라이프 수트가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너무 어두운 컬러를 피하고, 밝은 그레이나 블루 울 소재의 더블을 입는 방법으로 보완해가면 된다. 큰 체형이 콤플렉스라면 되도록 라펠이 넓은 재킷을 선택해서 전체 룩을 균형 있게 만든다. 혹 큰 키가 강조되길 원치 않는다면 되도록 스트라이프를 피하고 체크 무늬나 하운즈투스(hound’s tooth, 사냥개의 치아 모양으로 생긴 무늬로, 흰색 바탕에 검정 무늬가 있는 체크), 혹은 무늬 없는 솔리드 소재로 접근한다. 키가 좀 작은 편이라면 일단 바지가 구두를 덮지 않도록 길이를 조정하고, 평소보다 조금 짧아 보이는 재킷을 입어서 다리가 더 많이 노출되는 비율을 만든다. 어깨가 낮으면 패드를 어느 정도 넣은 재킷이 좋고, 반대로 어깨가 높다면 안감이 없고 부드러운 스타일이 어울린다. 이처럼 수트를 입는 방식은 참으로 논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