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나폴리 수트의 거장
체사레아톨리니
오랜만에 방문한 파리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럭셔리 스트리트인 상젤리제도, 새로운 브렌드의 기지 같은 마레도 아닌 프티팔레(Petit Palais Museum)파리시가 운영하는 시립 미술관)의 이브생로랑(Yves Saint Laurent)회고전 YSL이었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인물들뿐 아니라 아직 세상을 알기에 너무 이른 어린아이에서부터 현명한 휴가를 즐기는 노년의 부부에 이르기까지 파리의 모든 시민들이 모여 이브생로랑을 추억하는 건 그가 패션 역사에 족적을 남긴 디자이너를 넘어 프랑스 전체가 사랑한 위대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리라.

이브생로랑이나 프랑스가 여성 패션의 어떤 고향과도 같다면, 남성복의 뿌리는 한 인물이나 디자이너라기보단 유서 깊은 맞춤복이나 클래식 브랜드들이었고, 영국과 이탈리아의 교감과 재해석을 통해 형성된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항상 올곧은 정통, 원칙, 규정, 등을 고집하는 영국인들에 비해 예술에 대한 탁월한 유산을 상속 받고, 일상적으로 패션을 즐기고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탈리아인들이 오히려 남성복의 자산을 유니크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능수능란한 자질을 발휘해왔다. 하여 영국을 넘어서는 남성복의 새로운 오리지널로서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로마, 밀라노와 베니스에는 각 도시의 역사만큼 다양하게 분화된 문화와 패션이 존재한다. 그 도시들에는 유서 깊은 맞춤복 가게들도 여럿 있다. 그 오너들과 사르토(Sarto,테일러)들을 대면하면 모두들 자신의 수트가 이탈리아를 넘어 서계 최고의 제품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말을 틀림없이 듣게 될 것이다. 더할 수 없는 자부심이 가듣한 표정으로 예릐를 갖추며 상대를 깍아내리는 것도 참아내야 할 것이다. 물론 수트에 등급을 매기는 것도 어렵고 그 모든 수트의 장단점이 논리적인 도표로 정리되기도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자존심 센 오너와 사르토가 보여주는 드높은 자부심이 이탈리아를 남성복 세계 최강대국으로 끌어올린 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량 생산으로 쏟아지는 실용적인 제품들의 홍수 속에서 효율보다는 오직 품질에 포커스를 맞추고, 여전히 핸드메이드 공법을 고집하는 그들은 현대의 미켈란젤로들이며, 모든 남성복 관계자들의 영원한 스승이기도 하다.
그런 클래식 마스터들을 발굴하고 탐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당도하게 되는 나폴리에는 남자들을 클래식 수트의 깊은 세계로 인도하는 위대한 테일러, 체사레 아톨리니가 있다. 과연 남자의 스타일이란 직접 입어보고 생각하고 실패하고 다시 교훈을 찾는 경험을 통해서 진보하는 것이듯, 아톨리니의 재킷을 처음 입었던 그 순간, 나는 어떤 전율을 느꼈었다.
그동안 내가 입어 온 수트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아무리 훌륭하게 만든다고 해도 결국 평면적인 원단일진대 어깨를 이토록 입체적으로 감싸고 있는 것일까. 그 옷을 수십 번 반복해서 입으며 답을 찾아보고, 다시 내부를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깨, 소매, 허리 등 인체의 활동이 활발한 부분들을 정교한 수작업으로 처리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래서 나폴리 수트의 어깨 라인이 겉으로 보기에는 좀 작아 보일 만큼 몸에 밀착되어 있지만, 실제로 착용자는 가볍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는 소재의 퀄리티나 가격에 상관없이 실을 깊게 넣어 뜸을 뜨는 숙련된 바느질을 통해 완성된 옷의 구조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연성까지 확보하는 나폴리 장인들의 고유한 테크닉이다. 특히 나폴리 스타알에서 좋은 수트의 요건은 소재보다는 메이킹 기술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기계 작업보다 아름답지 못할 수 있으나, 옷을 입을수록 착용자의 몸에 더욱 빈틈없이 맞춰진다는 손바느질의 장점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체사레 아톨리나는 그와 같은 나폴리식 수트의 온전한 계승자이자 그 테일러링(tailoring)기술을 정렵한 테일러이며, 이탈리아 수트의 철학이 현실로 구현된 브랜드다. 특히 겸손과 자부심을 동시에 가진 아톨리니 선생은 테일러로서의 명분과 책무를 생각하면서, 후배들이 지나치게 비즈니스 확장에 집중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테일러가 신사들을 위한 유일한 옷을 제작하던 시적의 소박한 모습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아톨리니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브리오니와 키톤, 이사이야 등은 투자와 마케팅을 통해 일본과 미국 등지에 진출하면서 명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아톨리니는 여전히 나폴리의 공장에서 묵묵히 수트를 생산했고, 자신들의 철학을 이해한다고 여겨지는 소수의 클라이언트들에게만 제품을 공급할 따름이었다. 그처럼 수준 높은 수트를 제작하면서도 체사레 아톨리니라는 번듯한 브랜드 매장을 전 세계에서 몇 개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다(나폴리와 뉴욕에만 있다.)
아톨리니 브랜드의 이와 같은 전략은 여전히 노구(1933년생)를 이끌고 공장의 이곳저곳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작업자들을 격려하고 호통치는 체사레 아톨리니 선생을 직접 만나보면 더욱 이해가 된다.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지 않는 이들에게 아톨리니 제품을 팔 생각이 없다는 완고한 고집을 가졌을면서도 테일러가 사회에 기여하는 책무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없었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을 최고의 지위에 있을 수 있었을까 여행을 극도로 싫어해, 수십 년 동안 나폴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체사레 아톨리니 선생을 어렵게 찾아뵙고, 말씀을 나누었다. 물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기에 공장에서 그의 동선과 행보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자리였지만, 그의 나이를 충분히 감안해서 너무 많은 질문을 할 순 없었다. 그 앞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정보나 지식이 아닌 존경과 염려였으니까.


N 잠시도 쉬지 않고 공장을 오가며 작업을 지시하고, 본인이 직접 시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잠시나마 시간을 빌리는 것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C 나는 일할 때는 피곤하지 않으니까요. 일을 하지 않고 다른 걸 하면 힘이 들어요. 뭐든.
N 체사레 아톨리니에 대한 명성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 나폴리에서 직접 보니 여느 공장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대개의 수트 공장에서는 품질 책임자들이 각 프로세스를 통제하고 있는데, 여기 아톨리니만큼은 오너이자 테일러이신 체사레 아톨리니 선생께서 직접 작업 과정을 돌보고 계신다는 점 말입니다.
옷을 만드는 작업 과정은 굉장히 중요해요. 옷의 패턴을 만드는 테일러가 그 작업을 속속들이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죠. 수트나 재킷의 패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작업이 어떻게 되는지를 파악하고 그 작업의 수준에 따라야 해요. 그게 기본이죠. 누구나 어떤 옷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할아버지 커피 한잔 마셔볼래요?
N 할아버지 커피요?
C 카페 샤케라토(Caffe shakerato)에서 거품을 걸러낸 거 말이에요. 그걸 나는 할아버지 커피(Caffe del Nonno)라고 불러요. 항상 그걸 마셔요. 그냥 카페(에스프레소)는 너무 써.
N 맛있는데요? 이름도 정겹구요. 아톨리니 공장에 방문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나폴리 수트가 어떻게 제작되는지를 경험하면 저나 소비자의 안목이 많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C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항상 좋은 일입니다. (갖고 계시던 패턴에 관한 서류를 보여주고 카피해주시며)좋은 것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어디에서든 필요한 일이니까,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나 내 아들들은 여기서 누가 사진을 찍는 것을 아주 싫어해요. 난 아무 것도 걱정되지 않아요. 사진을 찍어간다고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N 맞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잠시 작업 과정을 둘러보거나 사진을 찍어간다고 갑자기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래도록 전통과 철학을 가지고 옷을 만들어 온 경험은 훔쳐 갈 수 없습니다.
C 맞아요. 맞아. 하하. 이리와 봐요. 몇 가지 보여줄게요.(벽에 있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우리는 요트팀과 축구팀에도 스폰서를 하지요. 사진에 체사레 아톨리니라고 쓰여 있잖아요. 내가 젊었을 때는 스포츠를 꽤나 좋아했지.(조각상을 보여주며)이 분이 나의 아버지 빈첸초 아톨리니예요. 정말 대단한 테일러였습니다.
N 아톨리니의 역사가 아버님이신 빈첸츠 아톨리니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나폴리식 수트의 어떤 기준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30년대에 주로 활동하신 아버지는 딱딱한 영국식 수트를 그대로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안감을 없애서 가볍고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마피나(Mappina, 천조각이라는 뜻)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모델을 만들어내셨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성공한 것은 아니에요. 마피나 재킷은 우리 가문의 아이콤이 되었지만, 그때 세상을 지배하던 영국식 모델들처럼 딱딱하지 않고, 너무 부드럽기 때문에 비판을 받기 일쑤였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점점 가볍고 부드러운 옷을 좋아하게 되면서 우리의 실력은 차츰 인정을 받게 되었어요. 게다가 아버지는 곡선으로 커브를 이루는 바르카라는 가슴주머니(Taschino aBarchetta,바르카는 돗단배라는 뜻). 재킷 어깨에 부드러운 주름을 내는 마니카 카미치아(Manica a Camicia, 마치 셔츠처럼), 그리고 재킷 소매의 단추들을 겹쳐 다는 스타일 등을 모두 창조해내셨죠.
N 체사레 아톨리니 선생님도 아버님에 이어 나폴리 수트의 확고한 맥을 짚으셨잖아요. 키톤과 이사이야의 론칭 과정에서 핵심적인 컨설턴트 역할을 하며 패턴을 만들어주시기도 했구요.
C 나는 옷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뭐 다 지난 일이니까.
N 키톤이나 브리오니처럼 또다른 이탈리아 클래식 수트들이 글로벌 마켓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수트 제조뿐만 아니라 리테일 비즈니스도 직접 하는데, 유독 아톨리니만큼은 오직 수트 제작에만 집중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C 그게 테일러의 일이니까. 광고하고 영업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몫이고, 테일러는 옷을 제대로 만드는 데 집중하는 거예요.
N 많은 분들이 아톨리니의 수트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예술에 대한 관심은 어떠신지요.
C 아버지 시절부터 우리는 늘 예술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지내왔어요. 그래서 아톨리니의 작업장은 매력적인 옷과 예술가들이 만나는 하나의 사랑방으로 쓰였던 셈이요. 우리 아뜰리에는 작가, 지식인, 예술가, 화가들의 만남의 장소였고, 문화를 교류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예술가와 단골손님들은 간혹 그들의 그림으로 우리 제품에 대한 값을 지불하기도 했지요. 나도 예술과 영화와 오페라를 사랑하고, 그림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체사레 아톨리니는 2013년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의상을 제작했다).
N 전 세계에서 유한하지만 최고의 고객들만을 가지고 있는 이톨리니인데 특별히 기억나는 고객이 있으시겠죠.
C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배우들, 그리고 왕족들이 아톨리니를 좋아해줘요. 고맙게 생각해요. 우리는 광고를 하거나 전 세계에 많은 매장을 내거나 한 적이 없는데, 그 중에서 이탈리아의 영화배우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아니(Marcello Mastroianni)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자신의 사이즈를 재고 스타일을 권해주기를 고집했죠. 그때 내가 그에게 물었어요. “재킷의 벤트는 센터를 원하세요? 사이드를 원하세요?”그가 대답하길, “당신은 어떻게 입고 다니시나요?”다시 내가, “없는 걸 입지요.” 그랫더니 “나도 그렇게 해주세요.” “나도체사레 아톨리니처럼 입고 다니고 싶으니까요.” 라고 말했어요. 하하.
N 저는 비록 테일러는 아니지만, 좋은 수트를 만들기 위해 여러 작업자들을 만나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보람도 큽니다만, 가끔 작업자들이 테크니션 특유의 고집이 있어서 대화가 어렵기도 하거든요.
C 당신은 항상 원하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하며 아주 엄격해야만 합니다. 주위를 배려하는 것은 옳지만, 타협해서는 안 돼요. 목표를 정하고,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고 집중하고 연구하세요. 정말 최고의 수트를 만들어내고 싶습니까? 그러면 그것에 모든 것을 바쳐요. 세상엔 쉬운 일은 없답니다. 내가 살아보니 그래요.
N 꼭 기억하겠습니다. 아톨리니의 세계관을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